볼트 깎던 칠곡 소년, 기아와 삼천리자전거를 세우다
골목에서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타던 삼천리자전거. 이 회사가 기아자동차와 한 뿌리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 회사 모두 김철호라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됐다. 볼트 깎던 철공소 직원이 어떻게 자전거와 자동차 회사를 세웠는지 따라가 봤다.
열일곱 살에 오사카 철공소로 간 칠곡 소년
김철호는 1905년 경상북도 칠곡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22년, 열일곱 살이던 그는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처음 일한 곳은 볼트와 너트를 만드는 삼화제작소였다. 직원이 10명 남짓한 작은 철공소였다.
조선인 차별이 심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몇 년 만에 공장 살림을 맡는 자리까지 올랐다.
퇴직금 대신 받은 선반 한 대
1929년 대공황이 터지자 삼화제작소는 문을 닫았다. 김철호는 퇴직금 대신 공장의 선반 한 대를 받았다.
그 선반으로 작은 창고에서 다시 볼트와 너트를 깎았다. 이듬해 스물다섯 살의 그는 삼화제작소를 다시 세워 사장이 됐다.
품질과 납기를 지키는 데 공을 들였다. 공장은 세 곳으로, 직원은 300명 넘게 늘었다.
볼트를 만들면서도 그의 눈은 자전거를 향해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자전거 수요가 크게 늘 것이고, 비포장 길이 많은 조선에는 튼튼한 자전거가 필요하다고 봤다.
기계를 뜯어 부산으로 옮겨 만든 삼천리호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그는 사업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1944년 12월 서울 영등포에 경성정공을 세웠다. 지금의 기아가 이 회사에서 출발했다.
창립 자리에서 그는 가난을 몰아내고 자주 국가를 세우려면 기계공업을 일으켜 공업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해방 뒤 경성정공은 자전거 부품을 만들며 기술을 쌓았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지만 김철호는 생산을 멈추지 않았다. 직원들을 설득해 공장 기계를 뜯어 피란지 부산으로 옮겼다.
1952년 부산에서 첫 국산 자전거가 나왔다. 이름은 삼천리호. 삼천리 강산을 자유롭게 달리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같은 해 회사 이름도 아시아에서 일어난다는 뜻의 기아(起亞)산업으로 바꿨다. 삼천리호는 1968년 자전거로는 처음 KS 마크를 받으며 품질을 인정받았다.
그 무렵 김철호는 자전거가 완성되면 자동차를, 자동차가 완성되면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했다. 피란지에서 자전거 한 대를 겨우 만든 회사가 하기에는 너무 큰 말이었다.
| 삼천리호가 나온 1952년, 가을의 부산 (사진: Rijksmuseum, CC0, 위키미디어 공용) |
부도를 맞고도 놓지 않은 오토바이와 삼륜차
1960년 기아산업은 자전거 사업 적자로 첫 부도를 맞고 은행 관리에 들어갔다. 김철호는 그 와중에도 다음 물건을 준비했다.
이듬해인 1961년에는 미국 수출 100만 달러를 넘기며 다시 일어설 발판을 마련했다.
1962년 혼다와 손잡은 국내 첫 오토바이 C-100과, 마쓰다 기술을 들여온 삼륜차 기아마스타 K-360이 나왔다.
삼륜차는 좁은 골목을 누비는 용달차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시리즈의 T-600은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가 됐다.
1964년에는 공채 1기 출신 김선홍 차장을 혼다에 보내 엔진 만드는 기술을 배워 오게 했다. 남의 엔진을 사다 쓰는 데 그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김선홍은 훗날 기아 회장이 됐다.
| 1969년식 기아마스타 T-600 (사진: Damian B Oh,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
소하리 공장을 보고 떠난 창업자
1970년 그는 경기도 시흥, 지금의 광명시 소하동에 자동차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엔진 주물부터 조립까지 한곳에서 하는 공장이었다.
공사 기간 내내 병석에 있는 날이 많았다. 1973년 소하리 공장이 문을 열었고, 그해 11월 김철호는 세상을 떠났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듬해인 1974년, 이 공장에서 기아의 첫 승용차 브리사가 나왔다. 그가 말한 자동차의 꿈은 그렇게 그가 떠난 뒤에 이뤄졌다.
| 기아의 첫 승용차 브리사 (사진: Chu, CC BY 4.0, 위키미디어 공용) |
자동차는 기아로, 자전거는 삼천리로
자동차 사업이 커지면서 자전거 부문은 1979년 분사했다. 1985년에는 기아그룹에서 완전히 독립했다. 이 회사가 지금의 삼천리자전거다.
삼천리자전거는 1987년 국내 처음으로 연간 생산 100만 대를 넘겼다. 1991년 레스포, 1996년 첼로 같은 브랜드를 차례로 내놨다.
2010년에는 국산 첫 전기자전거를 선보였다. 지금은 전기자전거가 회사 매출의 큰 축을 맡고 있다.
기아는 1997년 외환위기 속에 부도를 맞고 이듬해 현대자동차에 인수됐다. 그래도 기아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세계 곳곳을 달린다.
선반 한 대에서 시작한 두 회사
김철호의 출발은 퇴직금 대신 받은 선반 한 대였다. 그는 볼트를 깎으면서 자전거를 내다봤고, 자전거를 만들면서 자동차를 내다봤다.
지금 팔리는 물건에 머물지 않고 늘 한 단계 다음을 준비했다. 전쟁 중에도 기계를 뜯어 옮겼고, 부도를 맞고도 오토바이와 삼륜차 개발을 놓지 않았다.
남들이 지금 팔리는 물건을 더 많이 찍어 낼 때, 그는 다음에 팔릴 물건을 만들 기술을 먼저 쌓았다.
자전거에서 오토바이, 삼륜차, 승용차로 이어진 그의 길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걸어온 길과도 그대로 겹친다.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그가 세운 두 회사는 7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한국의 도로와 골목을 달리고 있다.
참고: 위키백과 김철호, 위키백과 삼천리자전거, 한국경제 생글생글, EBN(기아 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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