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에 학교를 떠난 소년, 자라를 세우다

13살 아이가 엄마를 따라 동네 식료품 가게에 갔다. 가게 주인은 더 이상 외상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소문은 학교까지 퍼졌고, 창피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아이가 자라(ZARA)를 세운 아만시오 오르테가다. 자라와 마시모두띠를 거느린 인디텍스는 90여 개국에 매장을 둔 세계 최대 의류 기업이 됐다.

오르테가는 2015년 빌 게이츠를 제치고 잠시 세계 최고 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프린세사 거리의 자라 매장
스페인 마드리드의 자라 매장 (사진: Luis García (Zaqarbal), CC BY-SA 3.0 ES, 위키미디어 공용)

셔츠 가게 심부름꾼에서 자라 간판까지

철도 노동자 아버지의 벌이로는 식구가 한 달을 버티기 어려웠다. 오르테가는 14살에 셔츠 가게 심부름꾼이 됐고, 이후 옷감 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옷 만드는 법을 익혔다.

손님을 매일 상대하며 알게 된 사실은 단순했다. 예쁜 옷은 너무 비싸서 동네 부자 몇 명만 산다는 것.

그는 비슷한 옷을 싼 옷감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1975년, 처음 일했던 셔츠 가게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자기 가게를 열었다. 그게 자라였다.

남들은 6개월 전에, 자라는 2주 만에

옷 회사들은 보통 계절이 오기 6개월 전에 물량의 상당 부분을 미리 만든다. 모자라면 곤란하니 혹시 몰라서 넉넉히 찍는다.

하지만 반년 뒤 무슨 옷이 팔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30~40%는 세일가로 나가고, 손님들은 세일을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오르테가는 반대로 갔다. 미리 정하는 물량은 일부만 두고, 나머지는 시즌이 시작된 뒤 매장 반응을 보고 결정했다. 팔리는 옷만 조금씩 더 만들었고, 디자인부터 매장 진열까지 빠르면 2주였다.

이 속도를 위해 인건비가 비싼 스페인과 인근 국가에 공장을 뒀다. 대신 광고비는 거의 쓰지 않았고, 그 돈으로 목 좋은 자리에 매장을 냈다.

스페인 아르테이소의 인디텍스 본사 건물
스페인 아르테이소에 있는 인디텍스 본사 (사진: Nemigo,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다음 주에 오면 그 옷은 없다

자라는 일주일에 두 번 신상품을 들이고, 한 가지 옷은 적게 만든다. 2주쯤 지나면 매장에서 빠진다.

지금 안 사면 없다는 걸 아는 손님들은 세일을 기다리지 않고 매장을 자주 찾는다.

차이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드러났다. 재고가 쌓인 경쟁사들은 60~70% 할인에 나섰고, 길들여진 손님들은 이후에도 제값에 사지 않았다.

재고가 적었던 인디텍스는 할인을 크게 늘리지 않고도 매출을 키웠고, 그 불황기에 매장을 500곳 넘게 새로 열었다.

외상과 넉넉한 재고는 같은 생각에서 나온다

외상은 다음 달엔 갚겠지 하는 믿음이다. 6개월 뒤에도 이만큼은 팔리겠지 하며 옷을 쌓아 두는 것도 같은 낙관이다. 카드 할부를 긁으며 다음 달의 나를 믿는 마음도 다르지 않다.

다들 어떻게 하면 더 싸게 만들까를 고민할 때, 오르테가는 손님이 찾는 옷을 어떻게 늦지 않게 걸까를 물었다. 질문이 달라지자 답도 정반대로 나왔다.

투자든 부업이든 아이 학원이든,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는 생각이 들면 잠시 멈춰 볼 일이다.

내 지갑에도 혹시 몰라서 쌓아 둔 재고가 있다

오르테가의 눈으로 내 지출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재고가 보인다.

세일한다고 한꺼번에 사 둔 생필품은 유통기한을 넘기거나 베란다 구석에서 잊힌다. 언젠가 쓰겠지 하며 해지하지 않은 구독 서비스는 매달 조용히 돈을 빼 간다. 다음 달의 나를 믿고 나눠 긁은 할부는 이번 달 월급을 미리 당겨 쓴 것과 같다.

자라가 팔리는 옷만 조금씩 더 만들었듯, 돈도 실제로 쓰는 만큼만 채우면 된다. 지난 한 달 동안 정말 꺼내 쓴 물건과 서비스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음 달부터 줄여 보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장보기 전에 냉장고와 수납장을 먼저 열어 보고, 통장의 정기 결제 내역을 한 번 훑어보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찾아낸 돈은 어떤 투자 수익률보다 확실하게 남는다. 재고를 줄이는 일은 오르테가에게도, 평범한 월급쟁이에게도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돈 관리였다.

13살에 학교를 떠난 오르테가가 남들보다 더 가진 건 돈도 학벌도 아니었다. 남들이 당연하게 넘긴 것을 한 번 더 물어본 습관이었다.

오르테가는 코바동가 오셔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만족은 중요한 일을 해내려는 사람에게 가장 나쁜 것이다. 맹목적인 낙관은 해롭다. 성공하려면 매일 조직을 거꾸로 뒤집어 봐야 한다.

혹시 몰라서 넉넉히 쌓아 두는 마음도, 따져 보면 그 맹목적인 낙관이었다.

출처: 코바동가 오셔, 『Así es Amancio Ortega, el hombre que creó Zara』(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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