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에서 시작한 두 대학원생, 구글을 세우다
1995년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래리 페이지가 학교를 둘러보러 왔다. 캠퍼스를 안내한 학생은 이미 그곳에서 공부하던 세르게이 브린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검색엔진이 구글이다. 2026년 1월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으로 페이지의 재산은 2,810억 달러, 브린은 2,610억 달러였다. 세계 2위와 4위다.
| 2003년의 래리 페이지(왼쪽)와 세르게이 브린 (사진: Ehud Kenan, CC BY 2.0, 위키미디어 공용) |
검색어 대신 링크를 센 검색엔진, 백럽
1996년 두 사람은 기숙사 방에서 검색엔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검색엔진은 대부분 페이지 안에 검색어가 몇 번 나오는지로 순위를 매겼다. 키워드만 잔뜩 적어 넣으면 쓸모없는 페이지도 위로 올라왔다.
페이지는 논문 인용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많이 인용되는 논문이 좋은 논문으로 대접받듯, 다른 사이트가 많이 링크하는 페이지가 믿을 만한 페이지라고 봤다.
이 엔진의 첫 이름은 백럽(BackRub)이었다. 다른 페이지에서 들어오는 링크, 즉 백링크를 따진다는 뜻이었다. 이름은 곧 구글로 바뀌었다. 1 뒤에 0이 100개 붙는 수를 뜻하는 구골(googol)을 비튼 이름이다.
있지도 않은 회사 앞으로 써 준 10만 달러 수표
1998년 8월, 선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창업자 앤디 벡톨샤임이 두 사람에게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써 줬다. 수표에 적힌 이름은 Google Inc.였다. 그런 회사는 아직 없었다.
수표를 받으려면 회사부터 세워야 했다. 그렇게 구글은 정식 법인이 됐다.
둘은 기숙사를 나와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한 차고로 옮겼다. 차고 주인 수전 워치츠키는 훗날 구글의 16번째 직원이 됐고, 나중에는 유튜브 CEO까지 지냈다.
| 구글이 처음 사무실로 쓴 멘로파크의 차고 (사진: Jordiipa,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
75만 달러에 팔려다 무산된 구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두 창업자는 회사를 팔려고 한 적이 있다. 1999년 당시 잘나가던 포털 익사이트에 75만 달러 안팎을 받고 넘기려 했다.
익사이트 CEO 조지 벨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훗날 CNBC 인터뷰에서 그는 가격은 문제가 아니었다고 했다. 페이지가 익사이트의 검색 기술을 전부 걷어내고 구글로 바꾸라는 조건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자기 기술이 제대로 쓰이지 않을 바에는 팔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 거래가 깨진 덕분에 구글은 독립 회사로 남았다.
평범한 회사가 되지 않겠다던 상장 편지
구글은 2004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때 두 창업자가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구글은 평범한 회사가 아니다. 우리는 평범한 회사가 될 생각도 없다.
분기 실적에 휘둘리지 않고 길게 보겠다는 선언이었다. 두 사람은 의결권이 더 많은 주식을 창업자가 쥐는 구조로 상장했고, 덕분에 당장 돈이 안 되는 사업에도 오래 투자할 수 있었다.
2015년에는 지주회사 알파벳을 세워 검색과 광고 밖의 사업을 따로 떼어 냈다. 2019년 두 사람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의결권의 상당 부분을 쥔 대주주로 남아 있다.
남들이 검색어를 셀 때 링크를 셌다
구글이 처음부터 돈이 많았던 건 아니다. 기숙사 방과 차고에서 시작했고, 75만 달러에 회사를 넘기려 했을 만큼 앞날도 불투명했다.
차이를 만든 건 기준이었다. 다른 검색엔진들이 페이지 속 검색어 개수를 셀 때, 두 사람은 그 페이지를 가리키는 링크를 셌다. 같은 인터넷을 보면서 다른 것을 센 셈이다.
자라의 오르테가가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6개월 전 대량 생산을 의심했듯, 구글도 업계가 당연하게 쓰던 순위 매기는 방식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했다.
내가 매일 쓰는 기준 가운데 남들이 쓰니까 따라 쓰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쯤 따져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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